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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규 권사님 이야기 ( 퍼온글 )

2019-08-01 13:42:07, Hit : 16

작성자 : 김종각
최인규 권사는 1881년 11월 15일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 송정리에서 출생하여 성년기에 홍씨를 부인으로 맞아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최권사는 예수 믿기 전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1921년부터 예수를 믿게 된 후 방탕한 생활을 끊고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 하였고, 온 가족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며 자신의 믿는 바를 이웃에 증거하기를 기뻐하였다. 강릉지역, 삼척구역 북평교회에 출석한 최인규는 그 신앙의 순수함과 열심이 목회자와 신도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인정받아 속장이 되었으며 주일학교 교사일도 받아 충성하였다. 그는 교회의 크고 작은 일에 없어선 안된 중요한 일군이 되어 유사직도 받았고 주일학교 교장일도 맡았다. 최인규속장은 삼척구역의 천거로 권사직까지 받게 되었다.

최인규 권사는 천곡교회 개척에 발벗고 나서서 열심히 전도하며 예배를 인도하였고 자신의 논 1,369평(당시 싯가 600원)과 밭 539평(당시 싯가 450원)을 교회대지로 헌납 하였다. 교회 건축을 위해 낮에는 재목을 운반하고 밤에는 새끼 꼬며 열심히 기도하며 기쁨으로 일하였다. 결국 1932년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초가 8간의 예배당을 세우게 되었고 1933년에는 봉헌예식을 거행하였다.

1940년 들어서 심하게 강요되는 신사참배에 최권사는 우상숭배 할 수 없다 하여 거부하였다. 그래서 동년 5월 천곡교회에서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고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최권사는 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일본 경찰서장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처럼 어디 한번 혼 좀 나봐라 하고는 최인규 권사에게 똥통을 지고 온 동네를 "나는 신사참배않는 최인규다"라 고 외치며 돌게 시켰다. 일본순사는 채찍으로 때리면서 온 동리를 다니게 하였지만 최권사님은 오히려 기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능욕받고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믿고 더욱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나는 신사참배를 않는 최인규다"라고 외쳤다. 당시 삼척교회 권사로 울진교회를 맡아 전도사일을 하던 신앙의 친구 차국성은 이 소식을 듣고 경찰서장을 찾아가 최인규는 원래 정신병자인데 예수믿고 조금 나았다가 다시 재발한 것 같으니 석방시켜 달라고 간청하였다. 경찰서장은 차국성에게 "예수를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으시오. 당신이 정신병자요"하고 호통을 쳐보내기도 하였다. 비록 혹독한 고문을 가해온 서장까지도 최인규의 신앙에 내심으로 감복하고 있었다.

최인규 권사는 함흥재판소에서 재판받게 되었다. 그는 재판정에서도 굽힘없이 더욱 담대히 믿음을 증거하였다. 재판관앞에 서도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외에는 경배할 수 없으며 일본 천황도 하나님이 내신 사람으로 죄인에 불과하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일본은 죄악을 회개치 않으면 필히 패망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신앙을 증거한 후 신사참배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재판장은 화가나서 천황을 모독하였다고 불경죄를 더하여 2년 징역을 언도하였다.

최인규 권사는 감옥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늘 기쁘게 찬송부르며 전도하였다. 간수가 매일 아침 때리며 동방요배를 시키면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아니하므로 감옥에 왔는데 왜 띠리느냐 나는 재판소에서도 안하겠다고 선언한 사람이라고 호통쳤다. 최권사가 있는 감방에는 신사참배 거부한다고 감옥에 갇힌 원산지방 고성교회 이진구 목사도 있었다. 1941년 10월에 최인규 권사는 이진구 목사와 함께 대전감옥으로 이감되었다. 대전 감옥은 주로 사상범이 수감되는 곳으로 이곳에는 사상 전환시키려고 교회사가 있었다. 교회사는 "너희 선생인 전도사와 목사들로 신사참배하는데 공연히 고집부리지 말고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고 신사참배하면 특별히 가출옥시켜 주겠다 처자들이 보고싶지 않은가, 불쌍하지 않은가고 회유해 보았지만 최권사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다.

최권사는 계속되는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져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병감으로 이전되어 치료받았으나 1942년 12월 16일 오후2시 그가 사모하던 주님의 나라로 떠났다. 최권사는 끝가지 믿음을 지켜 옥중에서 순교한 것이다. 교우인 김창주는 1946년 3월에 자전거로 대전 형무소에 찾아가 최인규 권사의 유골을 찾아다가 삼척읍교회 정문 우편에 안장하고 강릉지방 교회들은 그곳에 "고 최공 인규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From 한국 컴퓨터선교회 인명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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